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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지도에서 나타나는 독도 영유(호사카유지 세종대학교 교수_요약) :: 2008/07/28 14:28
호사카유지 (세종대 교수) 일본 고지도의 역사는 3기로 나누어서 고찰할 수 있다. 제1기는 고대로부터 중세까지의, 교키도(行基圖)를 일본지도의 기본도로 삼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일본지도에는 한때 울릉도가 그려졌으나 울릉도가 조선령으로 확인되면서 일본지도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제2기는 근세기(에도시대)이고 정교한 일본지도가 에도막부의 지도 편찬 작업으로 탄생되었다. 에도막부는 각 지방의 영주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지에 관한 지도를 작성케 하여 그것을 제출케 한 후 한 장으로 편집해 일본 전도를 만들었다. 울릉도, 독도는 일본의 영토 외로 취급되었다. 1696년에 '다케시마(울릉도) 도해금지령'이 내려진 후 그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 시기에 민간에서 제작된 대표적인 지도인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1779)나 하야시 시헤이(林子平)의 '삼국접양지도'(1785)등도 모두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령으로 기재했다. 그러나 19세기 초, 나가쿠보의 지도의 모방본 중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오키 섬과 같은 색으로 표시한 지도가 있었다. 그것은 '다케시마 도해금지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제작한 지도라 할 수 있다.
제3기는 1905년까지의 메이지 시대이다. 이 시기의 일본지도에는 울릉도, 독도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본인 제작의 조선전도에는 다케시마(竹島)와 마쓰시마(松島)가 등장한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의 집권세력은 에도막부를 타도한 사람들이었고 에도막부와 달리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야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서양지도의 유입으로 도명(島名)혼란이 일어나 일본 제작의 조선지도에는 다케시마, 마쓰시마를 울릉도, 독도로 기재한 지도, 다케시마를 존재하지 않는 알고노트로 마쓰시마를 울릉도(서양명: 다쥬레)의 위치에 기재한 지도, 마쓰시마(울릉도)만 기재한 지도, 다케시마와 마쓰시마 및 리안쿠르 락(독도) 등 3섬 모두를 그린 지도 등, 다양한 조선지도들이 제작되었다. 일본의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태정관은 1877년에 '다케시마와 마쓰시마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지령을 내렸다. 여기서 다케시마는 울릉도이고 마쓰시마는 독도를 가리키고 있어 태정관은 에도막부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태정관이 폐지(1885)되어 내각제(1890)를 도입한 일본정부는 2섬의 새로운 명칭(=울릉도는 마쓰시마, 독도는 라안쿠르 락)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독도를 일본이름이 없는 무주지(無主地)이며 무인도로 규정해 1905년에 독도를 원래 울릉도의 명칭이었던 다케시마로 명명해 시마네현(島根県)에 한국 몰래 편입시켰다. 1890년 이후 메이지 정부는 독도가 고래로부터의 마쓰시마이고 에도막부가 도해를 금지한 땅이자 태정관이 그것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살해, 당시의 도명혼란을 이용하면서 독도를 무국적의 무인도로 규정, 선점논리를 적용하고 일본에 편입시키는 속임수를 사용했다는 것이 일본의 독도편입의 진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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